인생은 경주 아닌 여행입니다

저는 마라톤 경주를 즐겨 봅니다. 보통 주말에 열리는 데다 텔레비전에서 생중계를 해 주기 때문에 휴일 느긋한 마음으로 마라톤 경주를 지켜보는 일이 더러 있습니다. 마라톤이 시작되면 처음엔 한꺼번에 혼잡하게 달리다가도 이내 선두그룹이 형성되고 저는 내내 선두그룹을 지켜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텔레비전에서는 선두그룹만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승자는 대부분 선두그룹에서 나옵니다. 그런데 선두그룹 중에서 처음부터 가장 앞장서서 달리던 선수가 우승하는 일은 드뭅니다. 우승자는 대부분 선두그룹 중에서도 중간그룹이나 하위그룹에 섞여  묵묵히 달리다가 반환점을 돈 어느 지점에서부터 갑자기 앞서 나가기 시작하는 선수입니다. 누가 치고 나와 앞장서 나갈지, 아니면 선두 선수가 계속 선두를 지키며 달릴지 사뭇 흥미진진하기 때문에 화면에서 쉽게 눈을 떼지 못합니다. 때로는 치고 나온 선수가 다시 뒤처지고 다른 선수가 다시 선두를 차지하는 경우도 있어 마라톤을 지켜보는 재미가 더해집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선수가 우승을 차지하는 경우엔 그 묘미가 더 증폭됩니다.


마라톤처럼 달릴 수만은 없어

제가 이렇게 마라톤 경주를 즐겨 보는 까닭은 무엇보다도 마라톤을 인생에 비유하기 때문입니다.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성경 구절 때문은 아니지만 마라톤을 지켜보면 꼭 그런 현상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인생은 새옹지마(塞翁之馬)’라든가 ‘길고 짧은 건 대 봐야 안다’는 말도 있나 봅니다.

그런데 저는 인생이 과연 마라톤 경주에 비유되는 게 적절한 것인가 하고 생각해 볼 때가 있습니다. 또 후미그룹에 뒤처져 시청자들에게 단 한 번도 비쳐지지 않은 마라토너들을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어쩌면 후미에 뒤처진 마라토너가 있기 때문에 선두그룹이 존재하고 우승자가 존재하는 게 아닐까요. 그런데도 후미그룹에 속한 선수들은 애초부터 그대로 외면당하고 맙니다. 그렇다면 후미그룹에 속한 선수들은 마라톤 경주의 들러리일 뿐 마라토너가 아닐까요. 만일 제가 그날 마라톤 경주에 참가했다면 분명 후미그룹에 뒤처진, 그대로 외면당하고만 마라토너일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것도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 골인지점에 뒤늦게 들어와 쓸쓸히 홀로 돌아가는 마라토너라고 생각됩니다.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인생은 마라톤 경주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마 마라톤이 장거리 경주를 의미하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인생에 비유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 보면 마라톤도 일종의 경주며 승부의 세계입니다. 경주란 일정한 거리를 정하고 달려 빠름을 다투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라톤을 자기와의 싸움, 또는 자기와의 경주라고 말하기도 합니다만, 엄밀히 말하면 마라톤은 혼자 싸우는 게 아니라 남과 경쟁하면서 싸우는 것입니다. 남과 싸워 이겨야 되는 것입니다.

물론 마라톤에 비유되는 인생도 승부의 세계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꼭 경쟁함으로써 우리가 존재하게 된다면 우리의 인생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젊을 때는 젊음의 꿈을 이루기 위한 분발심을 위해 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까지 경쟁자로서의 삶을 살아간다면 그 삶은 곧 피곤하고 지치고 파괴되고 말 것입니다. 어쩌면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좌절감과 패배감 속에서 살 수밖에 없게 될 것입니다.

인생은 마라톤 경주가 아닙니다. 인생은 주어진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어가면서 음미하는 여행입니다. 그런데도 인생을 달리기에 비유한다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입니다. 인생을 위하여 우리가 항상 마라토너처럼 달려야만 한다면 그것은 너무나 가혹한 형벌입니다.


천천히 걸으며 쉬어 가는 산책

우리는 마라토너가 아닙니다. 우리는 산책자이거나 여행자입니다. 똑같이 주어진 인생이라는 길을 마라토너로서 달려갈 게 아니라 산책자로서 걸어가야 합니다. 산책자나 여행자는 뛰어가거나 달려가지 않습니다. 그냥 걷습니다. 그것도 자기 걸음걸이로 천천히 걷습니다. 저는 이제 달리고 싶지 않습니다. 그냥 걷고 싶습니다. 그것도 좀 느릿느릿 여유를 지니고 걷고 싶습니다. 걸어가다가 돌부리에 차여 넘어졌다 할지라도 미소를 지으며 일어나 바짓가랑이에 묻은 흙먼지를 툭툭 털어 보기도 하고, 길가에 피어난 꽃들도 보고 싶습니다. 발밑에 기어 다니는 달팽이와 개미도 밟지 않도록 애써 피하면서 걷고 싶습니다.

걷는다는 것은 쉰다는 것입니다. 쉬지 않으면 새로운 출발이 있을 수 없습니다. 쉰다는 것은 여유를 지닌다는 것입니다. 여유는 자기 자신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 중의 하나입니다. 지금 제가 사는 동네엔 아카시아 향기가 한창입니다. 아마 당신이 사는 동네에도 아카시아 향기가 한창일 것입니다. 당신도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 향기를 마음껏 맡을 줄 알아야 합니다.


시인 정호승 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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