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중반에 켈링은 뉴욕 지하철 당국의 자문위원으로 고용되었다. 그는 깨진 창문 이론을 실천에 옮기도록 종용했다. 지하철 당국은 데이비드 건이라는 새로운 지하철 소장을 영입하여,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지하철 재건 사업을 살펴보게 했다. 그 당시 많은 지하철 옹호자들은 건에게 낙서에 관해서는 걱정하지 말라고 조언하면서, 범죄와 지하철 신뢰도와 같은 보다 큰 문제에 초점을 맞추라고 권했다. 그것은 합리적인 충고처럼 보였다. 전체 지하철 시스템이 붕괴될 지경에 낙서 같은 것을 걱정한다는 것은 빙산쪽으로 머리를 향하고 있는 타이타닉호의 갑판을 청소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건은 '낙서는 지하철 시스템 붕괴의 상징이다'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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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 청소 작업은 1984~1990년까지 계속되었다. 그 때 지하철 당국은 윌리엄 브래턴을 지하철 경찰 서장으로 임명했다. 그렇게 하여 지하철 시스템 개선의 두 번째 단계에 접어들었다. 브래턴도 건과 마찬가지로 깨진 창문 이론의 신봉자였으며, 켈링을 자신의 지적인 스승으로 묘사했다. 경찰 서장으로서 그가 첫 번째로 실행한 작업은 건의 작업과 마찬가지로 돈키호테 같은 것이었다.
지하철 시스템에서 강력 범죄가 최고조에 달하자 브래턴은 무임 승차를 분쇄하기로 결정내렸다. 왜 그랬을까? 낙서와 마찬가지로 무임 승차가 티핑 포인트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는 작은 무질서의 신호가 보다 심각한 범죄를 불러일으킨다고 보았다.
그 무렵 하루 17만 명으로 추산되는 사람들이 승차권을 내지 않고 이런저런 통로를 통해 지하철 시스템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들 중 젊은 이들은 그냥 회전문 위로 건너뛰어 넘어들어왔다. 일부 사람들은 회전문에 바짝 기댄 채 억지로 밀고 들어갔다. 문제는 한 사람, 두 사람, 세 사람이 그런 짓을 하게 되면 다른 사람들도 - 그렇지 않았더라면 법을 어긴다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했을 사람들도 - 가세하게 된다는 것이다. 남들도 승차권을 내지 않는데 굳이 나만 내야 할 필요는 없다고 무임승차를 합리화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문제는 눈더미처럼 불어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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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처럼 신속하고도 극적으로 뉴욕 시의 범죄가 줄어들기 시작하자 브래턴과 줄리아니는 동일한 운동에 주의를 환기시켰다. 그들은 외관상 사소한 생활 범죄의 속성과 같은 것이 폭력 범죄의 티핑 포인트라고 주장했다.

티핑 포인트, 144쪽
2008/11/02 11:00 2008/11/0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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