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영혼의 가치
한 영혼의 가치
복 받은 안식일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잃어 버렸다가 찾아 본 경험 있으십니까?
누구나 한 번쯤은 잃어 버렸다가 다시 찾은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비싸든 싸든 잃어 버렸다가 다시 찾아본 일이 있을 것입니다.
얼마 전 저는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어떤 물건 하나를 다시 찾았는데 그것이 바로 이 것입니다.
비디오 테잎입니다.
이 테잎의 가격이 얼마나 될 것 같습니까?
맞추는 분께는 제가 이 것과 똑같은 테잎은 아니고(별 쓸모가 없을테니) 그에 해당하는 선물을 드리겠습니다.
네, 오천원입니다.
제가 이 테잎을 찾고 난 후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사실 이런 테잎은 저희 집에 아주 많습니다. 필요하면 돈 주고 또 사면 됩니다.
그런데 이 테잎엔 아주 특별한 장면이 녹화되어 있습니다.
제가 보여 드리고 싶은데 사정상...
보여 드릴까요?
예진이가 아주 어렸을 때 아직 말도 잘 못할 때 처음으로 ‘엄마’라는 말을 했을 때, 바로 그 장면을 찍어 두었던 테잎입니다.
비록 이 테잎의 시중 가격이 오천원 이라고 해도 제게 이 테잎의 가격은 그 이상, 아니 가격으로서는 평가할 수 없는 의미를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다함께 성경말씀 누가복음 15장 8절부터 10절에 있는 말씀을 봅시다.
“어떤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또 찾아낸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누가복음 15장 8절 ~ 10절
오늘 본문의 말씀은 한 여자의 잃어버린 동전, 드라크마에 관한 예수님의 비유입니다.
저는 이 이야기로 “잃어버린 드라크마와 나”란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드라크마”는 그리스의 화폐단위로 당시 노동자의 하루치 일당에 해당되는 금액으로 은 4.3그램 정도의 값어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데나리온도 마찬가지로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지만 이는 로마의 화폐단위입니다.
본문은 이 여인이 열 개의 드라크마를 가지고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유로 하나를 잃어버렸고 그 하나를 찾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잃어버린 은전 하나를 찾기 위해 애쓰는 노력이 어쩌면 필요 이상이라는 것과,
또 그 은전 하나를 찾은 것이 이웃 사람을 불러 함께 기뻐할 만한 것이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의 집들은 바닥이 거의 흙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게다가 지붕이 낮고 창문도 없는 집들이 대부분어서 잃어버린 동전을 찾기 위해서는 흙바닥의 먼지를 걷어내고 불을 켜고 동전을 찾아야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잃어버린 은전 하나를 찾았다고 해서 이웃까지 불러 함께 기뻐했다는 이야기는 정말이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열 드라크마 중에 한 드라크마, 오늘날로 말하면 하루 일당을 7만원 정도로 잡아 열흘치 품삯 70만원 중에서 7만원을 잃어버렸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 칠 만원을 찾기 위해 집안을 온통 뒤져 찾으시겠습니까? 물론 그렇게 하실 분도 계실 것입니다. 저도 거기까지는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 칠만원을 찾은 다음에 이웃을 불러 잔치를 베푸실 분 손 한 번 들어 보세요. 한 분도 안계시네요.
그런데 왜 본문속의 이 여자는 그렇게 했을까요?
이 이야기가 단순히 예수님의 비유이기 때문에 있을 수 있는 일에 대한 과장이라고 생각해야 할까요?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만일 이 부분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면 왜 이해되지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데에는 우리 나름대로의 가치관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가 이 여인의 처사를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데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여기에 오늘 우리가 이 이야기를 통해 배워야 할 중요한 진실이 숨겨져 있습니다.
우리가 이 이야기를 이해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계산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한 드라크마의 값어치를 놓고 산술적으로 계산해 봤을 때 이 여자의 행동은 계산적이지 못한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행동이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이 여자는 그랬을까요?
먼저 우리는 이 비유에 등장한 주인공이 여자라는 것과 열 개의 드라크마 중에 하나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대인 사회 풍습에서는 결혼할 때 남자가 여자에게 사랑의 증표와 지참금의 형태로 드라크마 10개를 꿰어 머리에 둘러주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받은 여인은 심지어 잠을 잘 때에도 이것을 풀어 놓지 않는 것이 상례였습니다.
그래서 이 드라크마는 여인에게 아주 특별한 의미를 지닌 것이었습니다.
적어도 그녀에게 있어, 그녀가 가지고 있었던 한 드라크마는 엄청난 가치와 의미를 지닌 것이었습니다. 남들은 모르지만, 그러나 그녀에게 있어 이 동전이 가지는 의미는 특별난 것이었습니다.
결혼 예물을 소중히 다루고 간직하는 일은 동서양을 뛰어넘어 매우 일반적인 사회적 가치입니다.
이러한 유대사회의 풍습을 이해하게 되면 이 여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 이제 달라진 것이 무엇입니까?
눈치가 빠르신 분은 벌써 이해하셨을텐데요,
우리가 유대의 결혼 풍습을 이해하기 전과 이해하고 난 후에 달라진 것이 무엇입니까?
여인에게 있어서 이 한 드라크마의 의미, 즉 그 드라크마의 가치가 달라졌습니다.
드라크마의 가격은 그대로 이지만 무엇이 달라졌습니까?
가치가 달라졌습니다.
우리가 비유속에 등장하는 여인의 행동에 관한 이해가 부족했던 까닭은 그녀가 잃어버린 드라크마의 가치를 제대로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녀의 드라크마의 가치를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그녀의 행동에 의문을 제기할 여지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강조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드라크마의 값어치, 가격이 아닌 가치에 관한 깨우침을 주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저는 주식이나 투자에 관심도 없고 할 여유 돈도 없지만 얼마 전 라디오 방송을 들으면서 투자에 관해 배운 게 하나 있습니다.
예컨데 우리는 천원짜리 주식을 10만원짜리 주식보다 싸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주가가 천원인 회사가 만약 내일 문을 닫는다면 천원이 과연 싼 겁니까?
또 주가가 10만원인 회사가 이익이 매년 두세배씩 늘어난다면 과연 10만원이 비싸다고 할 수 있습니까?
가격이 싼지 비싼지는 가치를 따져봐야 알 수 있습니다.
가치 투자의 대가라고 하는 워렌 버피라고 하는 사람은 한국투자를 늘리겠다고 언급하면서 우리 증시에서도 가치주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투자에 앞서서 키워야 할 것은 숨겨진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안목"이라고 했답니다.
요즘 재계에서 자주 쓰는 말들 중에, ‘가치 투자’, ‘가치 경영’이라는 말입니다.
예전엔 실물자산이나 가격에 중점을 둔 경영방식이 이젠 잠재적 ‘가치’로 그 비중이 옮겨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본문의 말씀으로 돌아가 봅시다.
본문이 기록된 누가복음 15장 1절에서 3절은 이 비유의 목적에 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은다 하더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누가복음 15장 1절 ~ 3절
그리고 나서 첫 번째 비유로 잃은 양 한 마리에 관한 비유가 나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오늘의 본문인 잃어버린 드라크마 하나에 관한 비유가 나오고, 마지막으로 집나간 한 아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세 가지 비유는 모두 구원문제를 서로 다른 측면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첫 번째 비유와 두 번째 비유는 짝을 이루는 쌍둥이 비유로 잃어버린 소유를 되찾기 위해 치른 수고와 그것을 성공적으로 되찾았을 때 누린 기쁨을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첫 번째 비유는 목자의 관심, 잃어버린 죄인을 찾아 수고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강조하고,
두 번째 비유는 한 영혼의 가치, 즉 잃어버린 한 영혼, 바로 여러분과 저의 가치에 관해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구원에 관해 이야기하시면서 그 구원의 대상인 바로 저와 여러분의 가치에 관해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비유 속에 나오는 여인이 잃어버린 드라크마는 직접적인 비유대상으로는 누가복음 15장 2절에 기록된 이른 바 ‘죄인’으로 대표되는 사람들로, 오늘날에는 바로 저와 여러분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잃어버린 한 드라크마는 바로 저와 여러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 본문 앞에서 이렇게 자문해 봅니다.
과연 우리가 그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일까요?
사람의 가치는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사람들은 그가 가진 것(What he has)으로 그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가 가진 재물, 재능, 외모 등과 같은 것들이 사람의 평가 기준입니다.
소위 이런 것들이 ‘몸 값’이 됩니다.
또 사람들은 그가 한 것(What he does)으로 그 사람의 가치를 매깁니다.
업적, 성취, 명예 등이 그런 것들입니다.
여러분의 몸 값은 얼마나 될 것 같습니까?
학생들이 공부를 하고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에 가려는 것도 이런 ‘몸 값’을 높이기 위한 몸부림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은 결코 이 ‘몸 값 올리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평가기준은 다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진 것이나, 우리가 한 것으로 우리를 평가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평가기준은 하나님과의 관계(Relationship with God)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주이시며, 우리의 아버지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자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 귀한 존재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갈바리 십자가에서 그분의 생명을 희생하셨습니다.
잃어버린 여러분과 저를 위해 예수님께서 지불하신 대가는 그분의 생명이었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예수님의 피 값으로 산 바된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가치는 우리 자신에게 있지 않습니다.
아무리 나 자신을 놓고 봐도 부족하고 결점투성이일 뿐입니다. 그야말로 무가치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나를 자녀로 삼아주신 예수님의 은혜와 그분의 희생이 무가치한 존재인 우리에게 최고의 가치를 부여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가치는 우리 스스로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부여해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 자신을 볼 때 우리는 정말 무가치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바라볼 때, 갈바리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돌아가신 예수님을 쳐다 볼 때 우리는 세상 어느 누구보다 더 귀한 존재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한 영혼의 가치를 누가 능히 평가할 수 있으리요? 만일 그대가 그 가치를 알고자 하면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서 거기서 그리스도께서 그 핏방울과 같은 땀을 흘리시면서 큰 고민을 당하시는 것을 주목하여 보라. 십자가에 달리신 구주를 바라보라.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하는 낙담의 부르짖음을 들어 보라. 상처난 머리, 찔린 옆구리, 상한 발을 바라보자. 그리스도께서 모든 위험을 무릅쓰시고 행하신 것을 기억하자. 우리의 구속을 위하여 하늘 자체가 위험을 무릅썼던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다만 한 죄인만을 위하여서라도 당신의 목숨을 버렸을 것이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십자가에 가까이 나아가면 거기서 그대는 한 영혼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다(실물 194,195).”(화잇주석, 눅 15:8-10)
이것이 오늘 저와 여러분의 가치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자신을 사랑하십시오. 여러분의 이웃을 사랑하십시오.
여러분 자신을 귀히 여기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이웃을 귀히 여기시기 바랍니다.
날 위해 자신의 생명을 아낌없이 쏟아 부으신 예수님의 희생을 결코 헛수고로 만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죄로부터 마음과 생각을 지키고, 몸과 정신을 최상으로 유지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날마다 무가치한 우리를 세상 무엇보다 가치 있게 바꾸어 놓으신 그분의 죽음을 기억하고 그 희생이 헛되지 않는 삶을 살아가시는 성도들 되시길 바라며 말씀을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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