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자 모세

본문속 사건의 발단은 모세가 “어떤 애굽 사람이 한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죽이는데서 시작합니다.

모세는 왜 애굽 사람을 죽였습니까?
“어떤 애굽 사람이 한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보고” 죽였습니다.
고통 받는 동족에 대한 연민과 압제하는 애굽인들에 대한 복수심이 일차적인 살인의 계기였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7장 25절은 모세의 살인의도를 또 다른 시각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23] 나이가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볼 생각이 나더니 [24] 한 사람이 원통한 일을 당함을 보고 보호하여 압제 받는 자를 위하여 원수를 갚아 애굽 사람을 쳐 죽이니라 [25] 그는 그의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통하여 구원해 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하였으나 그들이 깨닫지 못하였더라” 행 7:23~25

다시 말하면 모세는 애굽 사람을 죽인 자신의 행동이 적어도 그의 형제인 히브리 사람들에게는 칭찬이나 지지를 받을 것으로 기대했고, 또 이 일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해방운동과 자유회복의 물꼬가 트일 것으로 예상하고 애굽 사람을 죽였던 것입니다.

왕궁에 사는 30여년의 세월동안 자신의 동족인 히브리 사람들의 참담한 생활을 목격하며 어떻게 히브리인들을 해방시키고 다시 자유를 찾아 줄 수 있을까 하는게 모세의 고민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이 사십이 되어 “이제는 때가 되었다. 히브리인 해방을 위해 어떤 행동을 취해야겠다”는 생각하에 애굽 사람을 죽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상과는 반대로 동족인 히브리 사람들에게 거절당했을 뿐 아니라 이제는 애굽의 왕궁에서도 쫓겨나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문제는 어디에 있었을까요?
모세의 예상이 빗나가고 도망자의 신세가 되어야 했던 까닭은 무엇일까요?
모세의 최초의 시도가 실패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과연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요?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일까요?

부조와 선지자 상권 249페이지에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애굽 사람을 죽임으로 모세는 조상들이 누누이 범한 과오, 곧 하나님께서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일을 자신들의 손으로 처리한 과오를 반복하였다. 하나님의 뜻은 모세가 생각한 대로 전쟁으로 그분의 백성을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영광이 그분께만 돌려지도록 그분 자신의 능하신 힘으로 하시는 것이었다.”

오늘 본문의 말씀과 부조와 선지자에 기록된 글은 우리에게 아주 실제적인 교훈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때”와 “하나님의 방법”에 관한 교훈입니다.

모세가 실패한 까닭이 바로 이것을 간과했기 때문입니다.
비록 모세가 성장했고, 애굽의 모든 지혜를 습득했으며, 더욱이 그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빌어 그들을 구해 낼 것을 깨닫는 것으로 그 자신은 준비되었다 하더라도 아직 누구는 준비되지 못했습니까? 정작 히브리 사람들은 해방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창세기 15장 13절에서 아브람과 하신 약속과 46장 4절에서 야곱과 하신 그 약속의 때가 이르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기다리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방법”도 모세는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생각대로 방법을 찾아 갔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모세가 생각한대로 해방운동이나 전쟁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이 돌려지도록 하나님 자신의 능력으로 하시는 것이 그분의 방법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그분의 방법을 따르고 있습니까?
그분의 뜻을 좆아 살고 있습니까?


여기 재미있는 글이 하나 있습니다.
이 글은 우루과이에 있는 한 작은 교회의 벽에 쓰여진 글입니다.

제목은 “주기도문 쉽게 하지 마라”입니다.

주기도문 쉽게 하지 마라

"하늘에 계신" 하지 마라.
세상 일에만 빠져 있으면서...

"우리"라고 하지 마라.
너 혼자만 생각하며 살아가면서...

"아버지"라고 하지 마라.
아들딸로 살지 않으면서...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하지 마라.
자기 이름을 빛내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면서...

"나라이 임하옵시며"라고 하지 마라.
물질 만능의 나라를 원하면서...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하지 마라.
내 뜻대로 되기를 기도하면서...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하지 마라.
죽을 때까지 먹을 양식을 쌓아두려 하면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자를 사하여준 것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고 하지 마라.
누구에겐가 아직도 앙심을 품고 있으면서...

"우리를 시험에 들게하지 마옵시고"라고 하지 마라.
죄 지을 기회를 찾아다니면서...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 하지 마라.
악을 보고도 아무런 양심의 소리를 듣지 않으면서...

"아멘"이라고 하지 마라.
주님의 기도를 진정 나의 기도로 바치지 않으면서...


모세의 실패를 거울삼아 하나님의 때와 방법을 존중하고 따르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내 자신의 생각과 길을 고집하기보다 진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미디안의 모세

그렇지만 하나님은 이런 모세의 실패까지도 그분의 목적을 이루는 일에 사용하시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제가 출애굽기를 공부하면서 “아! 하나님의 섭리, 아! 하나님의 섭리” 감복을 합니다.
여러분도 따라해 보세요. “아! 하나님의 섭리”
이 하나님의 섭리를 떠올리면 암울하고 답답한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세상이, 역사가, 내 삶이 그냥 아무렇게나 의미 없이 흘러가는 것이라면 무슨 희망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섭리가 있기에 그 섭리를 어렴풋이나마 깨달을 수 있기 때문에 희망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메튜헨리 성경주석에는 하나님의 섭리에 관해 이런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보잘것없고 순전히 우발적인 것 같은 사건들이 나중에는 하나님의 지혜에 의해 아주 선한 목적들을 위하여 계획되었다는 것이 나타난다. 우연하고 사소한 사건이 때로는 한 인간의 인생의 가장 중요하고 복된 전환점이 되는 수가 있다.” 디럭스 메튜헨리 주석

여러분의 삶속에서 정말 우연하고 사소한 것처럼 보이는 사건일지라도 그것이 여러분의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저와 모든 성도들에게 그 섭리를 깨닫고 바라볼 수 있는 믿음과 영안을 허락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서 모세가 비록 실수하여 히브리 동족들로부터 거절당하고, 왕궁에서도 쫓겨난 신세가 된 것 같아 보였지만 하나님은 그를 버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섭리는 그를 미디안광야로 인도하여 모세로 하여금 이제는 제대로 준비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하셨음을 보게 됩니다.

부조와 선지자 249쪽에 있는 기록을 보면,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경솔한 행위도 당신의 목적을 달성하시는 데 사용하셨다. 모세는 아직 위대한 그의 사업을 성취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는 아브라함과 야곱이 배운 동일한 믿음의 교훈 -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위하여는 인간의 힘이나 지혜를 의지하지 말고 그분의 능력에 의지할 것 - 을 배워야 했다. 그리고 한적한 산중에서 모세가 배워야 할 다른 교훈들도 있었다. 극기와 고난의 학교에서 그는 인내와 감정을 조절하는 것을 배워야 했다. 현명하게 다스릴 수 있기 전에 그는 순종하기를 배워야 했다.”

준비되지 못한 모세를 광야로 불러내어 더 철저한 준비를 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40년 동안이나 애굽에서 살면서 특히 30년 가량을 애굽의 왕궁에서 살면서 모세는 배우지 말아야 할 것들을 너무 많이 배워버렸습니다.
물론 필요하고 유익한 교육도 있었지만 애굽에서 모세를 둘러싸고 있던 나쁜 영향들 곧 왕의 손자로서의 높은 지위, 왕궁의 방탕과 호화로움, 교활함과 거짓 종교의 신비, 우상 숭배등의 영향은 이미 모세의 습관과 품성을 형성하는데 악영향을 끼쳤습니다.

이러한 그의 신체와 정신에 스며든 악영향을 제거하기 위해 모세는 미디안으로 보내졌던 것입니다.
모세가 애굽사람을 죽인 후, 모든 환경들을 조정하시는 하나님께서 모세가 미디안으로 도망하게끔 환경을 제어하셨던 것입니다.
예전에 TV 프로그램중에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게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나오는 아주 버릇 나쁜 아이들의 버릇을 고쳐주는게 있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그 아이들을 부모들에게서 떨어뜨려서 멀리 보내 교육하는게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말 잘 안듣는 아이들을 어디로 보냈는지 아세요?

“예진아! 엄마 아빠가 예진이가 엄마 아빠 말씀 잘 안들으면 어디로 보낸다고 했지?”

네. 지리산 청학동이라는데로 보내더라구요...

그래서 한 동안 우리 예진이도 좀 말썽을 부리거나 말 잘 안들으면 예진엄마와 제가 “너 말 안들으면 지리산 청학동 보내버린다” 그러면 그 다음부터는 말을 잘 들어요.

그런데 이 방법이 알고 보니까 상당히 성서적이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출애굽을 이루려고 계획하고 계신데 아직 모세에게 나쁜 버릇이 남아 있는게 보여요. 그래서 그것을 하나님이 아시고는 모세를 어디로 보내신 겁니까?
네. 미디안광야, 청학동으로 보내버리신 겁니다.
그 촌, 시골 골짜구니로 가서 세상 때 좀 빼고 나쁜 습관이나 품성 같은 것 좀 고쳐서 돌아오라고 그렇게 보내 버리신 겁니다.

애굽은 모세를 학자로 신사로 정치가로 그리고 군인으로 키워 주었을지는 몰라도 애굽의 궁정으로서는 모세를 도와줄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애굽에서는 교양과정을 배우고, 미디안에서 진정한 신학과정을 마쳤던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교통하는 삶을 사는데에는 엄청난 장애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면에 있어서 미디안 광야에서의 생활은 모세로 하여금 하나님과 교통하며 애굽에서 받은 습관과 품성과 나쁜 인상들을 제거하는 훌륭한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에게도 시간이나 환경에 변화를 주어 오직 하나님과만 밀접한 교제의 갖는 일이 필요할까요?
네.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도 모세와 마찬가지로 벗겨내야할 이 세상에 물든 악한 습관들과 품성의 때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들은 환경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말씀하실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건 우리의 의지지 환경이 뭐가 중요하냐고 반문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의지만 가지고는 너무나 힘들기 때문에 우리는 환경도 개선을 해 주어야 합니다.

한 가지 예로 여러분 하루에 TV 얼마나 시청하십니까?
한국인의 평균 TV 시청시간은 2시간48분. 평균 수명을 80세로 본다면 8분의 1에 해당하는, 자그마치 10년이란 세월을 TV에 점령당한다고 합니다. 끔찍하지 않으세요?

만일 여러분이 TV를 보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요? 네 TV를 없애는 것입니다.
물론 TV는 없애지 않고 중요한 몇몇 프로그램만 시청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여러분이 우연히 한 드라마를 보게 되었습니다.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또 한 편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계속 이어지는 시리즈이거나 주말 연속극이라고 해도 계속 안 보실 수 있겠습니까?

어려운 일 일겁니다. TV드라마를 만드는 PD나 감독들이 사람들의 심리를 다 분석해서 드라마를 만들기 때문에 오늘 드라마를 봐서 흥미를 느꼈다 그럼 다음 주에 안보고는 못 배기게 만듭니다. 물론 의지가 강한 분들은 TV시청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고 주도적으로 TV를 시청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그게 매우 힘든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바엔 차라리 TV를 없애버리는 편이 훨씬 도움이 된다는 얘기입니다.

물론 의지도 중요하지만 아니 무엇보다 의지가 중요하지만 환경의 변화도 병행되어야만 악습관이나 나쁜 품성의 면모를 제거할 수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이치를 아시기 때문에 모세를 미디안으로 보내셨습니다.
침례요한의 경우나 사도 바울의 경험도 마찬가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어떤 점에서 모세는 이 사건을 통해 이미 그 자신이 애굽을 떠나 미디안으로 가서 살게 되는 개인적인 출애굽의 경험을 미리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날마다, 개인적으로 출애굽의 경험을 하면서 살고 계십니까?
이 세상이 주는 화려함, 재미, 유혹 이런 것들과 상관없이 언제든 이 세상 훌쩍 떠날 수 있는 그런 개인적인 출애굽을 미리 경험하며 살고 계십니까?

“그릇된 습관과 행습은 떨쳐 버려야 한다. 이 같은 잘못들을 시정하고 바른 원칙을 따라 살고자 하는 결정적인 노력만이 승리를 가져다 줄 수 있다.” 부조와 선지자 251페이지의 글입니다.

여러분의 매일의 삶 속에서 전 지구적인 출애굽 구원의 역사가 있기 전에 개인적인 출애굽의 역사가 먼저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권념하시는 하나님

이렇게 모세가 미디안에서 하나님의 교육을 받고 있는 동안 모세뿐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도 애굽을 떠날 준비가 되어갔고,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그 회복의 때가, 앞서 말한 “하나님의 때”가 가까이 이르러 오고 있음을 본문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다시 준비시키시고, 이스라엘 백성의 고역을 통해 구원에 대한 욕구를 일으켜 곧 다가올 출애굽의 역사에 한 걸음 더 나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언약을 늘 기억하시고 그 언약을 기어코 이루시는 분입니다.
단 그 약속을 기다리는 우리의 자세가 어떠해야 할지는 다시 말씀드리지 않아도 오늘 말씀을 통해 잘 깨닫게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비록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잊어버리거나 저 버릴지는 몰라도, 하나님은 결코 사람과 한 약속을 잊거나 저버리는 일이 없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기어이 지키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007/03/10 21:13 2007/03/10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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