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아 봅니다. 나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예슬씨처럼 처절한 경쟁 끝에 대학을 입학한 것도, 남보다 나은 ‘스펙’을 쌓아 취업에 성공한 것도 아닙니다. 현실이 그렇게 힘겹지도 않았고 미래에 대한 불안도 적었습니다. 적어도 저항이 필수적이지는 않았습니다. 이제와 생각해 보니 그 때에 누린 안정과 번영은 예슬씨도 누릴 권리가 있는 그것을 가불해 온 것이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된 것에 대해 기성세대의 한 구성원으로 깊이 반성하며 채무감을 가져보려 합니다.
부끄럽습니다. 고개가 절로 숙여집니다. ‘자발적 퇴교’ 선언을 보도한 첫 기사를 접하고 나는 예슬씨를 평가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나를 비난합니다. 예슬씨가 해야 했던 그 ‘불안한 줄타기’가 ‘내 책임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던 비겁함을, ‘이상과 현실’을 운운하며 제 자식 단속(?)하던 이기적 태도를 나무랍니다. 처음엔 몰랐습니다. 이 정도로 절박하고, 이 만큼 힘겨웠는지... 그래서 더 부끄럽습니다. 그리고 부끄러워도 눈물이 날 수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미안합니다. 사과합니다. 억눌린 상황에 당연한 몸부림을 삐딱하게 보려했던 내 시선 때문에 상처입지는 않았는지요? 소위 ‘노이즈 마케팅’이니 또 다른 사회적 ‘스펙’을 쌓기 위한게 아니겠냐며 기존의 상업화되고 네거티브한 프레임으로 예슬씨의 행동과 진정성을 의심했었습니다. 사과합니다.
예슬씨가 스스로 선택한 ‘자발’이기는 하나 세태에 의해 내 몰릴 수밖에 없었던 어쩌면 강요된 ‘자발’, 그 ‘자발적 퇴교’란 행동으로 겪게 될 고단한 현실을 내다보자니 더 미안해집니다. 관심이 부족했습니다.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자책합니다.
응원합니다. 예슬씨, 힘내십시오. 솔직히 걱정이 앞섭니다. 그렇지만 예슬씨는 충분히 강하고 더 강해질 것입니다. 예슬씨의 표현대로 ‘작지만 균열은 시작’되었습니다. 예슬씨의 선언 이후로 또 다른 변화를 향한 희망적 일탈의 조짐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자본과 기업에 잠식당한 골리앗 같은 교육 시스템과 대학들은 당신과 같은 용기 있고 도전적인 다윗들을 두려워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회복된 진리와 우정과 정의라는 물맷돌에 쓰러질 날이 올 것입니다. 부디 그 날이 올 때까지 견디십시오.
나는 예슬씨의 결정과 행동을 존중합니다. 그리고 가슴으로 응원합니다. 힘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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